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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50 [ep.25]
    일기 2024. 3. 10. 17:50

    선물

    놈이 나를 직접 찾아왔다. 내일 비가 오기에 일을 할 수 없었다는 적당한 사유로 찾아왔다는데 이놈 앞에서는 거절 따위 할 수 없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원. 그렇게 직장 앞까지 찾아왔고 그 먼 거리에서 대중교통으로 왔단다. 지하철뿐 아니라 버스로 환승까지. 대단한 집념인데 우리는 뭐 그 정도 시간마저 쪼개 쓸 수 있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나서 유지되는 인연이 아닌, 시간을 내어 우리만의 그림을 그리는 사이. 참 웃긴 게 만나자마자 푹 안기며 보고 싶었다는 말을 그렇게 해버리냐. 단 한순간도 그러하지 않은 적이 없다. 댕댕이야? 아무쪼록 적당히 안주를 즐길만한 곳으로 찾아들어갔고, 그렇게 한잔 두 잔.
     

    시간이 무르익고 난 후, 우리는 미리 점찍어놓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핸드폰을 보라는 그놈의 말을 듣고선 대화창을 열자 청첩장이 있었다. 사실 이거 주려고 왔단다. 기특한 놈. 제일 먼저 공개하는 거라는데 울컥한 마음보다는 살짝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심지어 어색하다는 말도 뱉었다. 발그레해진 놈의 볼짝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6월 따스한 늦봄과 초여름 그 어딘가에 걸쳐진 결혼식. 나 또한 그날 사회를 보러 가는데 이거 참 난감하면서 심장이 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적이 지난날 참 많기는 많았던 기고한 인생이긴 했는데. 그게 언제 적이야. 가장 사랑하는 동생들(어느 순간 '들'이 되었다. 신부가 될 사람도 우리가 되었기에)이 많은 이들 앞에서 서약을 맺는 행위에 아직도 머리가 어질 하다. 잘할 수 있으려나.


    노잼
    요즘 들어 면역이 떨어진 게 온몸으로 느껴진다. 수시로 떨려오는 눈밑살과 퇴근하면 몰려오는 참을 수 없는 졸려움. 잘도 끌어올린 루틴은 파괴되었다. 작년 초여름부터 줄곧 잘해왔던 운동인데 최근 들어 머릿속으로 재미없어라는 말만 중얼거린다. 정적인 운동이긴 하지만 근래 진짜 재미없는 걸 어쩐다. 돌파구를 찾자. 이토록 안절부절못한 내 움직임은 계속된다. 살면서 불태울만한 강제 취미는 정말 필수적이다. 직장에서 돈 받고 일하고 그게 끝이면 너무 인생이 아프잖아.


    뭐양


    강아지
    카페를 마음껏 활보 중인 요크셔테리어가 계속 내 자리로 온다. 위에서 머리를 쓰다듬거나 뱃살을 만져도 영 불쾌해하거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항상 탄이를 대했던 것처럼 나도 모르게 배에 손이 가버렸다. 아 근데 특유의 개냄새는 참 마주하기 어렵다. 우리 탄이는 옷장냄새 혹은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는데. 그래도 진짜 귀엽긴 하네 강아지. 언젠가는 정말 키워보고 싶어 정말이야. 대신 엄마가 9할은 키워줘야 돼. 난 일하니깐. 빨리 의정부 시골집에서 리모델링하고 입주하고 싶다. 마당 마음껏, 옥상 맘껏! 내 공간을 만들어야지.


    떠나자 만원들고



    뭐 같은 겨울
    근래 기분 좋은 산뜻한 햇살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겨울 너무 길다. 너무 싫다. 지겹다. 필요 이상으로 길다. 친구들과 슬리퍼를 끌며 한적하게 걷고 싶어. 그럴싸한 노포 테라스에 앉아 연탄불에 구이요리를 먹으며 소주 한잔하고 싶어. 가슴이 답답할 땐 차에 창문을 열고 머리 좀 식혔으면 좋겠어. 동네 한 바퀴 뛰거나 헬스를 마치고 집걸어가는 길에도 땀 마르지 않은 그 느낌이 좋고.  잠이 안 올 땐, 후줄근한 러닝셔츠에 반바지 입고 캔맥주 몇 개 사러 편의점에 가고 싶어. 간혹 드라이빙하며 혼자 바다나 보러 갔으면 좋겠어. 여름이 필요해. 햇살이 필요해. 참 뭐 같은 겨울. 여러모로 고통스럽다.


    행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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